이제야 만난 아이는 고작 23살이었다. 23살. 모든 것이 불안하고 위태로웠고 그렇기에 제 손으로 망처버렸던 최악의 시기. 그 시기가 이제는 하나뿐인 아들까지 뺏어갈려고 한다. 아나킨은 부쩍 잠이 많아진 아이의 손을 잡으며 차오르는 눈물을 삼켰다. 그때나 지금이나 눈물이라는 것은 감정을 흐리게 만들어 상황을 가리게 한다. 포스에게 갉아먹혀가는 듯 자신보다 창백해진 루크의 이마를 쓸었다. 자신의 마음대로 움직이지만 씨늘한지 펄펄 끓은 건지 아들의 온기가 전해지지 않는 의수가 오늘따라 너무 야속하다. 그런 자신의 포스가 잠든 아이에게 닿은 것일까? 살이 푹 꺼진 눈꺼풀 위로 눈동자가 돌아가는게 보이더니 그토록 예쁜 눈동자가 아나킨을 반겼다.
“아버지...”
자신을 좀먹는 애비가 뭐가 좋은지 병마가 가득한 얼굴 위로 그토록 예쁜 미소가 떠오른다. 그리고 전해지는 아이의 포스는 그 누구보다 따뜻해서 일순 마음이 무너지는 기분이 아나킨을 언습해온다. 이렇게 매말라가는 아이가 아닌데...저 높은 하늘 속에 빛날 태양같은 아이인데...왜 하필...생각들이 끈적한 감정의 부산물을 달고 둥둥 떠다닌다. 아이는 못난 애비의 눈물을 마른 나뭇가지 같은 손가락을 닦아주고 싶어 움찔거렸고, 아나킨은 그런 아이의 손을 꼭 잡아 볼 뿐이다.
“그만 나와 베이더경”
병든 환자를 보는 시간은 참으로 짧다. 아나킨은 생떼같은 아들을 통해서 잔인한 사실을 알게된다. 아이는 눈을 뜬지 얼마나 되었다고 아버지의 얼굴을 한번 유리알 같은 눈동자에 담아보더니 눈을 감았다. 덜컥 다신 아이가 눈을 뜨지 못하게 될 것 같은 불안감이 가슴 속에 퍼져나갔지만 뒤에 들리는 신경질적인 노크소리 때문에 무거운 몸을 일으켜야했다. 뒤를 돌자 또 다른 아이가 자신을 바라본다. 부드러워 보일 정도로 따뜻한 브루넷과 초콜릿 같은 브라운 눈동자가 마음에 전혀 안든다고 외치듯 아나킨을 째려보고 있다. 전체적으로 자신을 닮은 이목구비가 마치 자기 자신이 힐난하는 것 같아 시선이 절로 아래를 향했다.
" 동쪽 은하계에 아직도 제국군이 남아있다는 정보가 있어"
"... ..."
"당장 해치우고 와"
역겨움을 참는 표정을 감출 새도 없이 또 다른 아이는 라이트 세이버를 찔러오 듯 아나킨이 한평생 쓰고 다니던 헬멧으로 배를 꾹 눌렀다. 아니킨은 자신의 배를 찌르는 해골같은 검은 헬멧을 군말 없이 받아 쓸 뿐이였다. 이제는 쓰고 싶지도, 보고 싶지도 않는 '다스베이더'의 끔찍한 흔적들이지만 아나킨은 남아있는 두 아이들을 위해선 몇번이고 '다스베이더'로 살아 갈 마음이었다.
"루크...루크..."
그 이름을 부르면 안돼는 것이었다.
"루크, 이 마스크를 벗겨주겠니?"
그 말 또한 하면 안돼는 것이었다.
"죽음을 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단다. 한번이라도... 너를 내 두 눈으로 직접 보게 해다오..."
안돼, 안돼!!!!
아나킨은 그 날의 꿈 속에서 비명같은 헐떡거림과 함께 눈을 떴다. 잠깐의 눈붙임을 위해 무인모드로 돌려놓았던 엑스윙은 때마침 동쪽 은하계 외각에 있는 이름 모를 행성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나킨은 흔들리는 시선을 제자리로 돌리기 위해 눈가와 관자놀이를 엄지와 검지로 꾹꾹 누르듯 비벼왔다. 가죽느낌과 그 너머 전해지는 딱딱하고 싸늘한 느낌이 꿈 속에서 자신을 끄집어내었다. 다시 생각해도 그때 아이의 얼굴을 보면 안돼는 것이었다. 자신은 그날 그 숨막히는 다스베이더라는 감옥 속에서 죽었어야했다. 욕심이었고 그 욕심에 의해 자신은 이렇게 끔찍한 목숨을 연명하고 있었다.
눈을 뜨는 것이 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아나킨은 자신이 눈을 '떳다'는 사실에 믿기지 못했다. 눈을 깜박이자 당연하게 보이는 붉은 시야가 아니였다. 그렇다고 익히 잘 알고 있는 뼈가 띵 할 정도로 차가운 박타탱크 액체의 느낌도 없었다. 어리둥절한 머릿 속과 다르게 뉴런이 보내는 신호에 반응한 몸은 손을 들어 눈가를 더듬거렸다. 당연하게 없어야 하는 의수는 얌전히 몸에 보내는 신호따라 움직인다. 눈을 뜨니 당연하게도 잠들었던 육신들 또한 깨어나듯 멀리서 들리는 노래소리와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들이 점점 가까워지는 듯 하더니 촤악 하는 소리와 함께 터지기 기다렸다는 듯 희미한 빛들이 앞다투어 아나킨의 눈가에 부딪쳤다.
"아버지"
아까완 다르게 눈을 뜨기 힘들어서 눈꺼풀을 몇번이고 깜박거렸다. 들려오는 목소리에 손까지 써가며 눈을 비비던 행위를 멈췄다. 그때 바라본 아들의 얼굴은 어땠지? 울고 있었던가? 웃고 있었던가?
"베이더님...! 당신이 왜...반란군에 있는 겁니,크헉!"
확실한 건 아이는 자신의 발아래 죽어가는 이름 모를 제독과 비슷한 표정은 아니였을것이다. 어둡고 딱딱한 껍질을 깨서 다시 '태어난' 자신에게 아들의 원래 얼굴로 돌릴 수만 있다면...제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던 불쌍한 이들을 몇번이고 죽일 수 있었다. 아나킨은 자신에게 너무도 안 어울리는 초록빛 라이트세이버를 휘둘렸다. 이제 남아있는 제국군들은 다스베이더가 전장에 등장하면 공포에 질린 숨을 헐떡거렸고 반란군들은 반대로 안도와 승리를 예상하는 한숨을 몰아쉬었다. 아나킨은 고개들 도망치듯 떠오르는 스타 디스트로이어를 향해 한 손을 움켜쥐었다. 잘 알고 있었고 망가질대로 망가진 함선의 내부는 눈감아도 찾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스타 디스트로이어 함성의 절반이 붉은 불덩이를 품다 터지는 알껍질처럼 타올랐다. 아마 그때 아들의 얼굴을 비추던 축제 불꽃도 폭발해가는 저 색과 비슷했다. 그때 자신은 눈을 뜨고 바라본 아들보단 지금 자신이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과 공포로 전해졌다. 부정하듯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의수들로 자신의 얼굴을 더듬거리는 자신을 오히려 아이가 진정시켰다.
"아버지. 아버지."
"나는...루크,내가,어떻게...왜?"
"괜찮아요. 아버지 다 끝났어요. 제가 있잖아요."
아이의 얼굴 위로 무언가가 반짝거리는 걸 기억한다. 솔직히 그때의 아나킨은 새로 태어난 신생아처럼 눈 앞이 흐릿했다. 당연했다. 아무리 박타탱크로 담가진 몸이였어도 무스타파 열기에 타들어간 각막은 시력까지 깎아먹었기에 헬멧이 없는 상태에서 무언가를 본다는 건 아나킨에게 매우 고역이였다. 그 불편함까지 이겨가면서 마지막으로 눈물 젖은 아들의 얼굴을 보았던 것이였는데... 여전히 자신은 살아숨쉬며 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 그때의 루크는 드디어 해피엔딩으로 끝난 이 순간을 안도 했을 것이다.
* * *
나날이 나아져가는 몸상태에 아나킨은 정말 '기적'이라는 것이 있는 것일까? 생각했다. 어리둥절한 상태에서 아나킨은 자연스레 아들의 손을 잡고 반란군의 몬 칼라마리 스타 크루저를 휘젓고 다니고 있었다. 아무리 자기 기준으로 살아가는 아나킨이여도 반란군들은 -특히 또 다른 자식인 레아를 중심으로- 자신을 탐탁치 않게 여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을 때마다 아나킨은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쓴맛이 도는 것을 느꼈다. '다스베이더'였던 20년간의 세월엔 그 시선은 또 다른 분노의 밑거름이였기에 되려 그 시선을 즐겼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거북함과 미안함에 몸둘바를 몰랐다. 특히 내부반에 딸린 의료시설을 이용할때마다 닭 쫓는 병아리 마냥 쫓아다니는 루크에게 얼마나 감사한지, 아나킨의 의수가 자신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 잘리지 않는 다른 손이 멍이 들정도로 잡아왔다.
아나킨은 자신이 눈을 뜬 지금이 오래 가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무스타파에서 겪은 화상은 문제가 아니였다. 제자리로 돌아온 신공화국의 처분이 발 밑 아래에서 입을 벌리고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있다. 그리고 그것을 막기위해 자신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공화국 건설에 힘쓰는 루크의 모습 도 알고 있었다. 하루에 몇번을 의무반에 들리며 자신의 몸상태를 체크하는 아이, 과할 정도로 자신을 아끼는 아이는 공화국에서 사소하게 생기는 행사나 안건마다 자신을 끌고 갔다. 아직은 숨쉬기 힘든 호흡기관 때문에 다스베이더 차림으로 그 앞에 나타나면 다들 팰퍼틴이 죽었던 것을 잊고 있는 듯 아나킨 앞에 눈치를 보며 팽팽히 자신의 안건만 주장하던 상원의원들은 제법 온순하게 토론을 주고 받았다. 그러면서 아직도 어린아이를 감시하는 선생님에게 칭찬을 바라는 듯 구는 이들을 보며 아나킨은 자신이 저지른 20년간의 죄를 적나라하게 느껴 더더욱 어떤 한마디를 남길 수가 없었다. 서로가 불편하고 숨이 막히는 공간 속에 오직 루크만 아무것도 모른 다는 듯 쾌활하게 의견들을 조율해나갔다. 그리고 그를 데리고 이곳저곳 건설해나가는 동맹행성들을 둘러보고 정 넘치는 이웃집 사람처럼 참견해왔다. 아나킨은 자신을 볼때마다 무슨 사신을 만난 듯 굳어있는 사람들의 진실을 볼때마다 아나킨 또한 혼이 나는 어린아이처럼 안절부절했다. 천성이 남이 자신을 보는 시선에 민감했고 감정에 솔직했던 자신이였기에 옛날 같았음 루크에게 다시는 그런 곳에 나가기 싫다고 큰소리 한번 쳤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 저곳 참견하는 것들도 루크의 천성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있다. 남을 존중하고 남을 위해 희생하던 아이였다. 그리고 본질을 꿰뚫어보던 아이였다. 그렇기에 자신이 구원 받을 수 있었다. 아이도 이 못난 애비때문에 마음에 맞지 않는 참견꾼의 탈을 쓰고 이곳저곳을 휘젓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정치에 손 놓고 있던 아나킨이였어도 아무것도 모르는 문외한은 아니었다. 그는 한발자국 정치인들에게 떨어져 그들의 더러운 치태를 다 보고 살아왔다. 그렇기에 아이가 엉덩이에 불 붙은 망아지마냥 뛰어다니는 것도 20년간 학살 병기로 살아온 다스베이더가 다시 아나킨 스카이워커로 살아돌아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저리 뛰어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기특하고 눈물나는 노력에 어떤 거절의 말을 하지 못했다. 그저 자신의 의수를 스스럼없이 잡아오며 같이 가자는 말간 얼굴을 보며 졸졸 쫓아다닐 수 밖에 없었고
그때 거절하면 좀더 아이의 수명이 늘어나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감이 지금의 아니킨을 괴롭혔다.
아이가 쓰러진 건 남아있는 제국군들의 테러를 막기 위해 결성된 반란군들의- 이제는 은하 공화국군- 군대의 대령으로 임명 받았을 때었다. 그때는 의무반도 그 과로라고만 이야기를 남겼고 아이도 안하던 짓을 했기에 이러는 것이라면서 머쓱한 미소를 보였다. 아이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던 자신이 무슨 심정으로 뛰어왔는지 미소 짓는 그 얼굴에 뭐라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 미소 앞에서 어떤 말도 못하고 푹 쉬라며 어색하게 아이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그리고 깨닫았다 자신도 모르게 '달려온 육신'에 따라 엉망으로 울던 호흡기는 얌전했다. 몸이 먼저 깨달아 헬멧을 벗었다. 떨어지는 헬멧과 함께 입에 물고 있는 호흡기까지 떼어버렸다. 입과 코는 점막이 엉망으로 엉켜 덧나버렸던 적이 없다는 듯 이제는 잊어버렸던 편안한 호흡이 폐부 깊이 들어갔다 빠져나간다. 입을 막았다. 불안한 의문이 머릿속이 스쳐지나갔다. 이게 정말 '기적'인가?
"아니였지. 저주 그 자체였어"
돌아갈 땐 코렐리안 코르벳에 몸을 실었다. 아이가 있는 나부행성에 가까워질 즈음 입에서 탓하듯 중얼거렸다. 도착한 아늑한 오두막 집 위로 보랏빛으로 하늘을 물들이고 있다. 내려온 자신이 헬멧을 벗으니 기다렸다는 누군가 아나킨의 헬멧을 받아드렸다. 반란군이라고 이름만 바뀌었을 뿐 자신은 여전히 누군가를 종 부리듯 굴고 있었다. 지겨운 피로감이 자신을 뒤덮혀가고 있었지만 그 앞에 기다리고 있는 두사람 때문에 눈을 감지 못하고 걸어갔다. 자신의 또 다른 사랑, 레아와 그 아이가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서있었다. 한...솔로 였던가? 시선이 머물자 두 사람의 얼굴도 자신과 비슷한 피로감을 달고 있는 듯 했다.
"예상기간은 일주일일 줄 알았는데"
"... ..."
"하루만에 돌아왔군 그래."
"...루크는 잘 있었어 레아?"
오는 내내 정신없이 작성한 보고서를 둘러보던 아이는 자신을 닮은 눈으로 진저리 난다는 말로 대답해왔다. 칭찬은 바라지도 않았다. 입은 이정도면 되지 않았냐면서 참을성 없이 한소리를 터트렸다. 아이의 눈썹이 단번에 찌푸려졌다. 사랑하는 그녀를 닮은 브라운 눈동자가 상처 하나 없는 자신의 얼굴을 담았다. 자신의 얼굴은 초조함을 가득 담고 있었다. 20년전 자신 그대로였다. 생김새도 내용물도. 몇번의 서류가 넘겨지고 레아가 일어났다. 몸이 기다렸다는 듯 자기보다 십몇센치 작은 아이의 뒤를 따라 걸었다.
"오늘은 미음도 넘기지 못해 유동식을 가져오니 그것도 몇숟가락 뜨지 못했어"
"... ..."
"눈을 뜨는 순간 마다 발작하는 횟수도 많아져서 진통제랑 수면제를 두단계 올렸고"
"... ..."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당신 잘못 아니야. 아까 보고서 보니깐 저번보다 더 포스 횟수가 적었던데"
"...루크 곁을 지켜줘서 고마워. 레아."
이 말이 자기 옆에 있는 아이에겐 형식적인 의미로 전해지지 않을 바라지만 아이의 얼굴은 여전히 얼굴을 찌푸릴 뿐이였다. 아니면 자신을 달래던 목소리가 낯설어 일 수도 있었다. 그 작은 오두막은 겉모습만 아늑하고 따뜻해보일 뿐 그 안은 적막할 정도로 어둠이 짙었다. 옛날 같음 다스베이더의 차림이 아니였음 이 어둠을 걸어갈 엄두도 못내던 자신일텐데 20년 전 그때처럼 회복을 끝낸 눈동자는 어둠에 익숙해지자마자 발을 내딛었다.
그냥 단순 과로와 다르게 아이는 계절이 한번 지나 갈때까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안았다. 아니 못했다고 정정해야겠다. 그때까지 아이의 빈자리는 지금의 자신의 딸아이과 그 아이의 남편이 메꿔나가느라 정신없었고 자신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어쩌지 못해 반란군에 잔류하고 있었다. 그저 아이의 병세를 돌보는 것에 주력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가 아이와 참 많은 것을 나눈 시간이었다. 20년간 다스베이더로 살아간 아나킨에겐 말이라는 건 참 어려운 행위였다. 증발한 말주변을 아이가 이끌어나갔지만 아이도 자신을 닮았는지 말주변이 많이 않았다. 그렇지만 몇번 오가는 대화와 마주하는 푸른 눈동자만 봐도 서로의 감정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 솔직히 이 순간이 영원하기를 바라왔다. 그렇기에 지금의 자신은 얼마나 많은 후회의 눈물을 흘리는 것일까...결국 아이의 빈자리는 제법 컸고 결국 구멍이 난 군사력을 혼자 남아 눈치만 보던 다스베이더가 차지하게 되었다. 그렇게 죽음의 부대라고 불리던 사령관이 반란군의 새로운 사령관이 되버리자 신 공화국에서도 다스베이더의 처분을 무기한 연기 할 수 밖에 없었다. 마치 조각난 퍼즐들이 저절로 맞춰 나가는 기분을 쏟아지는 공격 사이에 아나킨은 떨쳐낼 수 없었다. 그저 사령관 한명 바뀌었을 뿐인데 세상 밖 모든 불만을 울부짖던 제국군의 수가 반토막이 나버렸고 무서울 정도로 그들의 함선을 파괴해나갔다. 그때,만약 자신 때문에 루크가 쓰러졌다는 걸 알았다면...절때 하지 않았을 행동이였다. 하지만 아둔한 자신은 그저 점점 좋아져가는 몸상태를 생각도 못하고 넘쳐흐르는 포스를 그대로 폭발시키며 다녔다. 아나킨, 혹은 다스베이더는 언제 터질 지 모르는 폭탄처럼 출전만 하면 포스를 사용하지 못해 죽은 귀신처럼 라이트세이버를 들고 싸우기 보단 포스로 다 뭉게버렸다.
그리고 자신의 아이가 피를 토해 혼수상태로 빠져든 소식을 제국군이 피신되어 있는 행성 하나를 아나킨 혼자 파괴하고 돌아왔을 때 였다.
* * *
어떻게 그 먼 길을 달려온 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저 그나마 남아있는 팔다리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듯 움직일 뿐이었다. 누군가가 자신을 막는 것 같았는데 자신이 혼수상태에 빠진 것처럼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오직 기억에 남는건 자신이 왔다고 활짝 웃는 아이의 얼굴과 그 미소와 다르게 백짓장처럼 창백한 피부였다.
"오셨어요 아버지? 혼자 제국군 행성을 파괴했다면서요? 대단해요"
"허억...분명"
"아버지?"
"피를...토했다고..."
온통 피바다를 이루웠다고 했다. 온통. 그 몸 속에 있는 피를 전부 쏟아버릴 것처럼 끈임없이 붉은 혈꽃을 피었다고 들었다. 하지만 자신을 반기는 아이는 자신이 떠나기 전 그모습 그대로 깔끔한 행색이었지만 간신히 헬멧을 벗자 기다렸다는 듯 역한 피비린내와 그것을 가리기 위한 소독약이 코를 찔렀다. 옛날 같으면 맡을 수도 없을 냄새. 아나킨은 침대 옆 배치된 의자에 앉으면서 무서울 정도로 깨끗하게 정돈된 무서운 연극 무대에 올라 선 기분었다. 아니, 관객 인 건가? 누가 봐도 자신을 속이기 위해 방긋방긋 웃으며 말하는 아이의 입술이 매달라 딱쟁이가 앉아 있는 것까지 공포심에 질러가 처음으로 아이의 말이 박타탱크 안에서 듣는 것처럼 웅웅 소음만 들려왔다.
"아버지"
"어?"
"괜찮으세요? 혹시 많이 피곤하신가요?"
제가 너무 오래 잡고 있었나봐요. 죄송해요. 다정한 그 말이 변함없다. '모든게 다 착각이였나봐' 라고 말하고 싶은데...아들 손가락 끝에 껴있는 검붉은 핏자국과 입을 벌릴 때마다 느껴지는 피비린내가, 특히 추락하듯 그 아이가 죽어간다고 소리치는 아들의 포스들이 지금의 행복한 순간은 웃기지도 않는 연극이라고 알려주고 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나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옛날 제국의 개로 지냈던 다스베이더 였던 것처럼 개인 쿼터에 들어갈 뿐이었다. 들어가서 몇날며칠을 입었던 갑주를 풀었다. 희미한 먼지가 피어오를 것 같았고 비척비척 끌고가는 두 다리는 평소보다 죽은 시체를 끄는 것 같은 묵직함이 느껴졌다.
"... ...말도 안돼"
오랜만에 마주한 거울 속 자신에게 놀라 눈이 커진 듯 맞은 편 자신이 아직은 어색한 푸른 눈을 크게 뜨고 있다. 더듬.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손바닥으로 자신의 머리를 쓸어본다. 모래같은 짧은 금발머리가 정말 모래처럼 까슬까슬한 소리를 낸다. 다 타버리고 엉망으로 새살이 돋은 머리에는 한 아기가 어른이 될때까지 박타탱크에 절여있을때도 나지 않던 거였다. 믿을 수가 없어 움찔거리던 다른 손으로 몇번이고 머리를 쓸어보고 쓸어본다. 혼돈으로 일렁이는 벽안은 근 20년 만에 자신의 얼굴을 바라봤다. 전신 화상 때문에 박타탱크에 절여있던 피부층이 얇아서 새로운 기계를 박은 호스가 보여야 하는데 마치 언제 그런 적이 있었냐는 듯 매끈한 피부를 자랑한다. 그 뿐만이 아니라는 듯 양 뺨에 파고 들 듯 낙인처럼 달고 있던 커다란 상처들도 언제 우둘투둘 자신의 존재를 내비쳤냐는 듯 옅은 색만이 희미하게 보인다. 엉망으로 이어내려가던 모든 피부들이 다스베이더 보단 20년 전 죽었던 아나킨 스카이워커의 모습을 보인다. 옛날 같았음 고통과 분노를 보였을 모습을 지금은 공포를 느끼고 있다. 한바탕 포스 비전 속에 뒹군 것처럼 급기야 헐떡거리기까지 한다. 불안감은 모든 걸 말해준다. 한번도 나은 적 없던 그날의 흔적들이 기다렸다는 듯 새로이 재생되어가고 그만큼 아들의 뺨은 헬슥했다. 전해지는 아들의 포스는 살려달라는 듯 죽어가듯 헐떡거렸다. 그제야 이것을 '기적'이라 칭하면 안돼는 것이라고 깨닫는다. 언제나 깨달음이 늦는 자신은 공포에 끼이익 세면대를 긁으며 속절없이 무너졌다.
"그냥 과로라고 하지 않았어? 근데 왜 피를 토하냐고"
"그것 저희 의료 쪽에서도 알 수 없습니다."
"지금 장난하자는 거야?"
왔으면 보고를 해야 할 것 아니냐는 또 다른 아이의 신경질적인 호출이 아니였음 아나킨 그 자리에서 당장 기절해 이 현실을 도망치고 싶었다. 이 모든 원인이 자신이라는 '저주' 때문이란 걸 또 다른 아이가 안다면? 이제야 곁에 있다고 더럽다는 듯 자리를 피하지 않는 아이인데 그 아이까지 나를 버린다면? 한번 부정적인 감정이 바이러스처럼 번져간다. 그는 아이가 죽기보다 싫어하는 다스베이더 갑주차림을 하고 반란군 최고 사령부로 무겁게 발을 옮겼다. 점점 가까워질수록 제국군의 테러와 신공화국 건설에 쌓인 스트레스가 제 하나뿐인 남동생이 각혈과 함께 터져나왔는지 의료드로이드를 향한 날카로운 지적이 들러왔다. 그 소리가 왜이렇게 날카롭게 다듬어져 자신에게 박혀드는 것인지 의식하지 못했음 자신의 발은 당장 도망치기 위해 반대방향으로 발걸음을 돌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만약은 문이 열리는 소리와 짜증이 한껏 담긴 브라운 눈동자랑 마주하자 아무것도 못하고 멍청하니 멈춰섰을 뿐이었다.
"뭐야? 왜 아직도 웃기는 가면을 쓰고 있어?"
"...루크의 상태는 어떻게 된거야?"
바로 빈정거리는 인사가 날라오고 아나킨은 익숙하게 거짓말이 점칠된 인사를 건낸다. 건내는 자신의 목소리가 들키지 않을까 괜히 타지 못한 가슴이 두근거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레아의 온 신경은 루크에게 향해있는 것 같았다. 당장 원인을 찾으라는 레아의 낮은 목소리와 원인을 모르겠다고 그냥 어느 날 스카이워커 중령님이 병들어간다는 높낮이 없는 드로이드의 목소리가 밀고당기기를 펼쳤다. 결국 그 줄다리기는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도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기에 진이 빠진 또 다든 아이는 지쳐선 손짓을 보이며 드로이드를 내보냈다. 어색한 공기가 너무 무겁다. 아무런 대답도 못하고 그 자리에 서있는 자신은 당장 도망가고 싶어서 움찔거리지만 어색하게 들고 있는 보고서를 조심스레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눈을 감고 분을 삭히던 아이가 느리게 눈꺼풀을 들어올리는데 그 모습이 마치 어릴 적 자신을 보는 것 같아 삐그덕 거리는 몸이 화들짝 놀랐다.
"좋아, 좋다고. 다음 출전은 일주일 뒤야"
"루크 상태가 그렇게...안좋아?"
말하는 단어 하나하나가 목에 턱턱 걸린다. 전혀 그 아이 답지 않게 아나킨이 보낸 보고서를 대충 넘기며 지친 모습을 보이다 식어있던 얼굴 위로 깊은 금이 간다.
"몰라."
"... ..."
"갑자기, 잡자기 그래. 과로로 쓰러졌던 것도 아니야. 루크가, 의료 드로이드에 손을 댔더라. 쓰러진 이유도 뇌쪽 부종이 생겨서 쓰러진 거였어"
"... ..."
"그때...루크가 쓰러지기 전에 무슨 이상함 없었어...? 바이러스에 걸렸던가. 어떤 행성에 같이 갔던가."
그제야 한 공간에 숨만 쉬어도 진저리치며 일어나던 아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같이 있는지 깨달았다. 자존심이 많이 상할텐데 언제나 당당하게 사람과의 시선을 맞추고 이야기 하던 그 눈이 이리저리 헤매이며 어물어물 물어보는 것이 안타까움보단 공포만 꾸역꾸역 먹게 만든다. 자기 쿼터에 돌아와서도 하나 뿐인 피붙이를 위해 자존심을 다 버린 얼데란 공주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아마도 그저 그 자리를 피하기 위해 자신도 어물거리며 '모른다'는 개같은 소리를 지껄였을 것이다. 몰려오는 이 끔찍한 감정에 헬멧으로 도망친 얼굴을 감쌌다. 숨쉬기 힘든 혐오가 건강해진 폐를 괴롭혔다.
그 이후로 굴러다니는 의류 드로이드 하나를 데리고 다녔다. 혹시 몰라 그대로 자기의 '부활'을 멈추지 않을까? 아니면 무엇이 제 몸에 되살아날까 무서워 전장에서 돌아오면 버릇처럼 온 몸을 스캔하고 검진해오게된다. 들러오는 결과마다 아나킨은 잊었던 무너저 내리는 감정에 부르르 떨어야했다. 다시 자라나는 나무처럼 '재생'하는 몸은 결국 다 타버린 장기를 작동하기 위해 박혀있는 기계판을 떼라는 드로이드의 말을 듣고 아나킨은 비명을 지르며 자기도 모르게 드로이드를 부셔버렸다. 그 말은 이미 자신의 몸은 무스타파에 전신을 태운 적 없던 23살 그때로 되돌아갔다는 말 자체였다. 정신은 무너져 내리고 자신에게 생명이 빨려 병상에 일어나지 못하는 아이의 소식은 억지로 피했다. 이미 자기는 벌써 겁쟁이가 되서 다스베이더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자신은 거대한 산짐승이 눈 앞에 돌아다니는 것처럼 이 상황에 겁에 질러 눈치만 보고 있다. 상황은 무섭게 변해간다. 아이는 이제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피가 섞인 가래를 뱉어냈고 먹던 병원식도 못먹어 아이의 음식이 점점 묽어져 소화가 잘되는 음식으로 바뀌어있었다. 아이가 없고 자신은 말썽이자 자기는 책상에 앉아 글 읽는 건 재능이 없다며 떠나던 딸아이의 남편 마저 돌아와 아이의 공백을 물러받았다. 몸이 열몇개가 있어도 숨 쉬는 틈만 있는 딸아이는 한숨이 눈물 대신인 것처럼 버릇처럼 내쉬었다. 자신만 진실이란 괴물에 겁을 먹고 평소처럼 떨어지는 제국군과의 싸움에 나갔다 일이주가 지나야 돌아왔다. 한번은 돌아오는 함선 속에서 다시는 눈을 뜨지 않길 바라기도 했다.
그래도...이기적인 자신은 죽어가는 아이를 놓을 수가 없다. 오랜만에 돌아오자 1인실이라는 것만 빼고는 별거 없던 아이의 병실이 이제는 중환자실과 비슷하게 변해있다. 찬찬히 둘러 본 병실은 어쩐지 제국군 시절 자기 방이라고 만들었을때와 비슷했다. 울컥, 겁에 질러 눌러놓았던 무언가가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중환자실까지 화약과 먼지를 뒤집어 쓴 다스베이더 갑주를 입고 오지 않아서 였을까? 오랜만에 밖으로 나온 속알맹이는 어린아이처럼 오랜만에 눈가가 뜨끈해지는 것을 느꼈다. 천천히 처져있는 천막같은 흰 커튼 사이를 파고들어 아이와 가까이 다가갔다. 아이는 당연하게 눈을 감고 있었다. 며칠 전 바라본 아이에겐 그저 혈색없는 창백한 피부 밖에 달라진 것이 없었는데 벌써 아이의 눈꺼풀이 푹 꺼져있었다. 그것이 자신이 상처를 낸 것 같아 차가운 의수로 조심스레 뻣어보았다. 눈가에 닿기 전 두개의 태양이 높이 뜰 때 타투인에 보던 밝은 모래색 금발이 무드등따라 하늘거렸다. 진짜 손이였음 그 머리카락의 간지러움 또한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새삼스레 자신의 처지가 비참했다. 그리고 저기 누워 있는 아이까지 잡아먹고 있다는 현실이 끔찍했다. 화들짝 닿지 못한 의수가 다시 아나킨에게 돌아갔다. 결국 남은 선택지는 이제는 멀쩡한 시야로 아이를 한없이 만지는 것 뿐이었다. 순해보이는 눈매와 진한 눈썹 도톰한 입술 끝으로 짧고 각진 턱이 파드메의 지혜로움을 닮았다. 새삼스레 아이는 자신보단 하나뿐인 사랑을 많이 닮았다. 그 얼굴을 다시 병들어가는 걸 보지 못할거라고 했는데...자신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 무능하다 못해 쓸모없는 자신을 보고 그동안 사람들은 구원받고 공포에 떨었을까? 이제는 익숙한 자기를 향한 비난을 삼키며 조금이라도 아이를 보기 위해 눈도 깜박이지 않았다. 그러자 파르르 떨던 아이의 속눈썹이 팔랑이며 유리구슬처럼 반짝거리는 눈동자가 어두운 병실 속에서 빛난다.
"아버지"
병색이 완연한 얼굴인데 입 밖으로 나온 목소리는 아나킨이 잘 알고 있는 부드러운 목소리이다. 자기에겐 너무도 사치스런 상냥함이 가득 들어있었다. 아나킨은 자신의 얼굴 위로 다스베이더 방어막이 없다는 것을 잠시 잊어버리는 듯 숨기지 못한 감정이 흘러나왔다. 루크는 어두운 병실 때문인지 자신의 아버지가 애간장이 녹은 표정으로 자신을 끈질기게 보고 있다는 걸 모르는 것 같다. 아이는 자신이 죽어간다는 진실을 모르는 듯 환하게 웃는다. 그 미소가 아나킨의 눈 안쪽에 박혀든다. 웃는 그 미소까지 어쩜 그렇게 사랑스러울까? 이런 감정은 너무 먼 과거에 느꼈던 감정들이라서 숨통이 막히는 고통보단 벅찬 감동이 얇은 연막처럼 마음을 둔갑시킨다.
"많이"
"?"
"좋아지셨네요. 다행이다"
어쩐지 뿌듯함을 담고 있는 목소리다. 큰 충격이 그를 강타했다. 저 아이는 다 알고 있어. 불안감이 악마처럼 부드럽게 속삭이며 사라졌다. 아무런 반응도 못하고 충격에 휘청거리는 아비를 보자 느리게 미소가 의아함으로 변해간다. 후들거리는 팔로 몸까지 일으키자 어깨를 다소 아프게 잡는 딱딱한 의수의 느낌을 받았다.
"다"
"네?"
"다 알고 있었던 거지?"
아이의 표정이 또 바뀐다. 마주한 다른 듯 닯은 벽안 두 쌍이 부딪힌다. 흔들거리는 아이의 눈동자가 천천히 아나킨의 머리 끝에서 발끝으로 시선으로 더듬거리다 다시 초록빛이 도는 아비의 푸른 벽안을 마주한다. 그 속에서 아나킨은 '들켰다'라고 말하는 듯 흔들거리는 아이의 벽안이 보였다. 가려졌던 감동은 사라지고 충격과 공포에 질린 감정들이 아나킨의 뇌수를 뜨겁게 태우는 듯 뒷목에 열기가 느껴졌다.
"아나킨"
두 사람 밖에 없는 공간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반사적으로 들리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자 환한 빛무리들이 모여 한 사람을 만드는 듯 형상하고 있다. 요동치는 포스들이 그가 누군지 알려준다. 아나킨은 점점 윤각을 보이는 빛무리를 보면서 차올랐던 감정을 표정으로 보이며 한탄하듯 어떤 이름을 중얼거린다.
"오비완"
* * *
"은하 제국이 멸망했던 그때 너는 아직 시스의 기운이 섞여있었어. 죽어가면서 제다이로서 라이트사이드를 가질 수 있었고. 하지만 루크는...너희 죽음을 받아드릴 수 없었단다."
"... ..."
"그렇기에 너의 육신이 루크의 포스를 강제로 가져가게 되버렸어. 네가 원한 것이 아니라해도 포스는 루크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그게 뭔 줄 알겠지?"
"...리빙 포스"
"그래 이런 경우를 그랜드 마스터는 많이 보았다고 하더구나. 제다이들 사이에 결혼이 허락했을때 자식인 제다이가 부모인 제다이의 시체를 가지고 의사도 없이 리빙 포스로 살리는 일들이 점점 많아지고 그렇기에 제다이 사이엔 결혼은 금지가 되버렸지"
"그래서 내가...다시 부활한 이유가 루크의 소원이란 말이...라고?"
스믈스믈 차오르는 포스의 움직임에 오비완은 예상했다는 한숨이 흘러나온다. 죽어서까지 이 스승을 괴롭히는 제자는 자기의 몸뚱이 마냥 시체처럼 창백해져 있다. 그것 말고는 오비완이 잘 알고 있는 뺀질이 얼굴이었다. 살아있을땐 골칫거리였지만 미워 할 수 없었고, 고통에 숨이 막혔고, 지금은 그리움을 불러이르키는 외모였다. 말로만 들었지만 저렇게 완벽에 가까운 얼굴로 되살리다니...오비완은 만약 아나킨이 없었음 루크의 무한한 재능을 어디까지였을까? 하는 감상에 젖어갔다.
"그걸 지금...와서 이야기를 해...?"
"...아나킨"
"아이가....루크가 결정한 거라고 해도 나에겐 말했어야지!!!"
널뛰는 포스를 눌러담느라 아나킨 자신은 처음으로 제 손으로 무언가를 잡아 흐릿하게 일렁이는 오비완에게 물건을 던졌다. 씨근거리며 패악질 부리는 자신의 제자를 한두번 본 것이 아니라는 듯 제법 평정을 담은 눈으로 바라본다. 오 저런 천둥벌거숭이였던 모습도 오랜만인데? 죽어서 그런지 자꾸 생각이 감성적으로 튄다. 찬찬히 열이 받아 벌거진 제자와 그런 제자와 자신 사이를 눈치보는 병색이 완연한 또 다른 제자를 번갈아 바라봤다. 이것 또 한 포스의 뜻 인 걸까? 한 평생 제다이인 자신이 보기에도 포스는 자신의 아들을 너무 사랑했고 그만큼 이기적인 존재였다. 자신의 아들이 무엇을 느끼는지 무엇을 사랑하는지 모르는 듯 언제나 제멋대로 자신의 '아들'을 위해 길을 만들었다. 그 길이 융단으로 만든 꽃길이라도 발에 닿는 모든 것들이 가시밭길로 느끼는 지 모르는 것이 뻔했다. 지금도 그의 '아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다는 공포에 질려 눈물을 보이고 있었다. 자신의 사지를 잘라낸 원수 앞에서 말이다.
"어떻게 하면 끊어낼 수 있죠? 그 정도는 알려 줄 수 있잖아요..."
"... ..."
"내가 아니라...루크를 위해서라도 알려주세요...마스터"
다시는 자신의 제자의 입에서 들을 수 없을 호칭을 들을 줄이야. 오비완은 지금 눈 앞에 남은 건 오직 20년 간 말라비틀어 딱딱하게 굳은 성질머리와 자존심 밖에 남지 않은 다스베이더의 찌꺼기가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며 '애원'이라는 것을 해온다는 현실에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애원 속에서 자신이 이렇다 할 방법을 줄 수 없는 사실에 포스 영 상태에서도 죽어 없어진 육체의 고통이 오는 것 같아 눈을 꾹 감았다 뜰 수 밖에 없었다.
"리빙 포스는 포스 본딩보다 한단계 높은 본딩이야. 그것도 다크사이드였던 포스로 영켜있어. 그것을 끊는 다는 것은 목숨을 끊는 것과 같은 것이란 걸 잘 알지 않느냐"
"저는 원한 적 없어요...그저 포스가,포스가 제멋대로 내 아이에게 그딴 짓을 한 거지"
"그러니깐 더더욱 함부로 끊어낼 수 없는 거지. 끊어냈다가 둘 다 잘못 되면? 넌 그렇다 치고 이제야 날개가 돋아난 내 아들이 어떻게 망가질지 감당 할 수 있겠어?"
얼마나 많은 후회와 슬픔으로 얼룩지어야 끝이 날 건지. 눈물 따위 20년 전 그날 다 타버린 줄 알았는데 눈가가 뜨겁게 달궈진다. 부정하고 싶었던 현실이 너무 가혹했다. 전혀 달라지지 않은 자신의 처지에 이것이 정말 축복이냐고 소리치고 싶었다. 그래봤자 달라진 것은 없었다. 아버지 하고 자신을 부르며 등 뒤에 전해지는 체온에 더 가슴이 아팠다. 그건 마주한 늙은 스승도 마찬가지라는 듯 착잡한 표정으로 아나킨과 루크를 바라본다. 항상 자신을 보는 표정은 항상 참으며 혼내는 표정이나 결국 결과가 좋으면 멋쩍은 칭찬과 딸려오던 미소 뿐이였는데...자신보다 오래 아이를 지켜본 그도 자신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그렇기에 냉정이 짤라 말하는 것들이 다 제다이였을 적 버릇이 아니라는 것을 아나킨을 더더욱 끔찍한 현실에 머리를 처박게 만들었다.
"...그래도 포기 못해요"
"아버지"
"아나킨"
"또 다시 사랑하는 사람을 잃으라니...그것도 저 때문에 죽는다니 차라리 제가 죽었음 죽었지 절때 못해요!"
아이의 얼굴이 자신과 비슷한 상처로 얼룩져 간다. 자기가 지금 무슨 상태인지 모르는 것이 뻔하다. 웃는 것도 말하는 말씨도 사람을 대하는 것도 모든 것들이 파드메를 닮았다고 생각했는데...아이는 사랑을 집착하는 끔찍한 부분을 물러받아있었다. 자신에 대한 혐오감이 화살처럼 박혀 그 자리부터 병들어간다. 그러지 말라는 듯 아이의 말라버린 손이 자신을 잡으러 손을 뻗지만 몸이 아이에게 떨어져 나간다. 이 행동이 아이를 병균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면 좋겠는데, 아나킨은 자신의 행동에 자신이 상처받는 기분을 느껴야했다. 끔찍한 죄악감이 가슴을 조여 오랜만에 호흡을 못하게 만든다. 죄인이다. 자신은 죄 그 자체였다. 다리가, 자신을 부르는 사랑을 두고 도망가버렸다.
"레아 내가 잘못 한 걸까?"
어느 날 사라진 그를 원망하는 것보단 자신을 향한 자책이 가득 든 동생의 말에 찢어지는 마음을 이어붙이며 지켜보던 레아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언제 깨어난 것인지 눈을 뜬 동생은 여전히 맑고 고와 보이는 푸른 눈동자를 느리게 깜박거리며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순수함은 아무리 병들게 만들어도 변함이 없었다. 레아는 그 아이가 하는 말이 아파서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것인지 아니면 오랜만에 정신이 들어 하는 말인지 분간하기 위해 조용히 아이의 버석거릴 것 같은 금발을 쓸어내렸다.
"내가 잘못한 걸까? 나는...다신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싶지 않아. 그래서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조금 전해주었을 뿐인데..."
"당연히 내 잘못이 아니지 루크. 이 시대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마음이야. 누가 그런 너희 마음을 비난 한단 거야?"
"비난이 아니였어. 차라리 자신을 살렸다는 이유를 비난을 했으면 조금이나마 편했을텐데"
"누구를 살려?"
듣고있는 말들을 들으면 들을 수록 레아는 이상한 의구심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하나 뿐인 동생의 감정이 자신에게 전염 되는 것일까? 아니면 피하고 있는 진실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 외면하던 자신의 눈앞에 직접 진실을 보여주는 것 때문일까?
"미안해 레아. 하지만 그를...아버지를 미워하지 말아줘. 이번은 내 멋대로 정한 거야. 아버지는 잘못 없어."
"루크 너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거야?"
"레아 장군님! 다스베이더를 찾았습니다!"
그아이 주변에 가리고 있는 막이 알이 깨지듯 금이 가고 있다. 그게 처음 루크가 데리고 온 원수를 볼때마다 느끼던 끔찍한 감정과 비슷했다. 입에 나오는 말을 하나 뿐인 누이의 말을 막고 싶었지만 막상 빠져나오는 말은 바보같은 어리둥절 뿐이었다. 만약 지금 원수의 행방을 알리지 않았음 레아는 끔찍한 진실 앞에 마주하고 있어야 했었다. 안도감이 우러러 나온 한숨이 터져나왔다. 결국은 보고 싶지 않은 진실을 마주 할 것을 모른체
* * *
온전히 있던 것들이 망가지고 난 이후로 다시 되찾는 것은 운명을 거스르는 것과 똑같다. 몇번째인지 모르는 암벽을 넘으며 제다이의 근본을 찾아나갔지만 얻는 것은 없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던가. 그는 눈에 밟히는 아들을 떠올리면서 고통에 울부짖었다. 인생의 절반을 따르던 다스 시디어스는 얼마나 승리에 도취된 인물인지 코러산트에 남아있는 제다이 사원은 원래 없는 것처럼 흔적도 없었다. 그건, 아나킨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그 '흔적'을 없앤 사람이 자신이였기에 매일 밤 죽음의 신마냥 검은 갑주로 둘러 쌓인 다스베이더가 방대한 제다이들의 자료들을 불태우는 기억은 악몽으로 다가왔다. 그 꿈 속에서 자신은 화를 내고 울고 애원을 해댔지만 끔찍했던 지난 날의 자신은 다크사이드에게 물든 시스답게 타오르는 불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물로 엉망이 된 시야 속에서 강렬한 주황빛이 일렁거리며 사라진다. 꿈에 깨어나도 남아있는 불꽃의 기억에 아나킨은 자신에게 여전히 불이 싫다고 실없는 생각을 하며 일어나야했다.
가리는 곳은 없었다. 남아있는 제다이의 흔적들을 긁어모으며 먹는 것도 잊어버리며 쉬는 것도 잊으며 걸었다. 띄엄 띄엄 떨어진 방파대의 빛을 따라 걸어가는 것처럼 자신의 다리는 멈추지 않고 걸어나갔다. 그것이 일주일이 넘어가고 보름이 넘어가는 날들이었지만 피곤함은 없었다. 제다이의 흔적은 결국 포스 그 자체였기에 흐릿한 신기루 일지라도 아나킨은 자신의 아들이 살 수만 있다면 기꺼이 이 지옥같은 삶을 걸어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다 희망고문 이었나요?"
부서지는 파도소리만이 고요한 사원을 훑고 지나갔다. 이제는 유일하게 남아있는 사원은 바다밖에 보이지 않은 행성에 세월을 보냈다. 그리고 그 사원은 오랜만에 찾아온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기 혐오에 진저리 치고 있는 자신 앞에 나타난 그랜드 마스터는 여전히 근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나킨은 자기의 무릎이 최대인 최고의 그랜드 마스터를 보며 마음이 무너졌다. 이제야 나타난 그랜드 마스터의 영은 아마 이제는 그만하라는 포스의 계시였다. 무너지는 돌아온 탕아와 그를 슬프게 바라보는 그랜드 마스터와 다르게 그를 이루고 있는 빛무리가 그 어두운 사원 속에 반짝거렸다.
"대체 이제와서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뭔가요? 내아이를 살리는 것조차 하지말라니 저보고 죽으라는 겁니까?"
"...포스가, 너희 아버지가 걱정하고 있다"
"제 '아버지'요?"
헛웃음이 터진다. 47년 간 이 끈질긴 목숨을 달고 사는 자신에게 처음 듣는 존재였다. 이제는 다 털어놓았다고 믿었던 분노가 마음을 어리럽히고 머리속을 들쑤시게 만들었다. 고상한 고대 건축으로 세워진 사원은 폭발하는 포스에 부르르 떨며 길게 고래의 울음 소리를 터트렸다. 비명 그 자체였지만 아나킨은 무스타파 때 겪었던 지난 날과 다를 바 없이 자신의 아픔에 비명만 지를 뿐이었다.
"아버지라면...나에게 이러면 안돼는 겁니다...정말 저를 걱정하는 거라면 제 어머니때부터 왜 그러는 겁니까?"
"... ..."
"그 놈의 집착 때문입니까? 집착을 버리라고 나에게 그러는 겁니까? 말해주세요 마스터!"
"...아니, 너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겠지"
"사랑? 이것이 사랑이라고요?"
타고 흐르는 눈물은 저기 부서지는 파도처럼 한 없이 흐른다. 그의 눈 앞에 있는 이가 하얗게 발화해가는 것 같이 뭉그러진다. 대체 자신의 아버지는 사랑을 무엇으로 생각하기에 자신을 이토록 괴롭히는 것일까? 자신의 눈물을 보는 것이 그에겐 커다란 행복으로 전해지는 것일까? 자신의 세상이 몇번이고 붕괴 되어갔는지 다 보고 있었으면서 가증스럽게 자신을 위해서라고 입을 올렸다. 확실한 건 이것은 사랑이 아니였고 고통이었다.
대체 자신은 무엇이기이게 많은 사람을 괴로움에 끌어당기는 것일까? 포스의 균형을 맞추러 온 선택받은 자라고 말해봤자 겉모습만 반지르르한 헛소리였다. 아나킨이라는 속알맹이는 아무도 몰랐다. 심지어 자신까지. 포스의 사랑을 받는다고 주변에서 숙덕거려도 점점 세월이 지날수록 자신에겐 한없는 고통과 내려앉은 무게일 뿐이었다. 자신이 없었으면 사랑하는 아들도 죽어가지 않았고 하나뿐인 딸아이는 다스베이더의 딸이라는 비난도 없었고 세상은 수많은 피를 흘리고 죽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고 하나뿐인 나의 사랑도 이 하늘아래 숨을 쉬고 있었을 것이다. 거기다 자신의 어머니는 아비 없이 잉태된 사생아를 품고 험한 세상을 살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비로소 자신의 안에 담아놓고만 있던 진실을 아나킨을 바라보았다. 사랑받고 싶었고 사랑하고 싶었던 것들은 아나킨 자신에게 사치였던 것이었다. 그 사치를 따라 걸어가니 당연히 주변은 상처를 받아 부패되어 죽어나간 것이었다.
"믿고 싶지 않았지만...역시 이것 밖에 없었네요"
"아나킨"
"나 하나 없었으면 되는 거였어...역시....그러면 되는 거였는데...나는 욕심이 많아서 보고 싶지않았는데...역시 그러면 안되었나봐"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뒤를 돌자 모든 것을 들은 딸아이가 일렁이는 시야에 들어왔다. 아나킨은 처음으로 눈물로 점칠 된 얼굴 위로 미소가 떠올랐다.
* * *
파도는 기다렸다는 듯 두 사람을 잡아먹을 것처럼 차올랐다 파스스 사라지더니 다시 아가리를 벌리듯 더 큰 파도를 펼쳤다. 그 남아있는 바다의 조각들이 아나킨과 레아의 발치를 차갑게 젹신다. 둘의 얼굴은 참으로 상반되어 있다. 보고 싶지 않던 진실을 모두 들은 레아는 괴로움과 혼란이 가득 찬 얼굴로 자신의 아비를 바라보고 있고 그런 아이의 모습과 다르게 아나킨 자신은 이제야 홀가분한 얼굴로 서있었다. 심지어 입가에는 미소까지 달려있다.
"아까 무슨 말을 한거야? 아버지는 뭐고 루크가 죽는 다는 소리는 뭐야?"
"타이밍 맞게 와서 다행이야."
"무시하지 말고 대답해!"
참지 못해 터진 목소리가 공포에 파르르 떨어가는 것 같다. 레아는 언제나 괜찮은 척 굴어도 저 사람 앞에서는 무너져내리는 자신을 보이는 것이 싫었다. 웃는 입꼬리가 원래대로 돌아갔지만 후련해 보이는 표정은 여전했다. 블래스터 잡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간다. 그런 자신의 손을 끔찍하다고 여기는 푸른 눈동자가 힐끔 보더니 천천히 다가왔다. 손이 반사적으로 블래스터를 뽑아들어 그를 향해 조준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다가오는 그는 아무런 위협이 되지않는지 울퉁불퉁한 바윗산을 걸어와 숨이 닿을 정도로 가까워져있다. 평소같음 역겨움에 뒷걸음치는 자신일텐데 후련함을 가장한 슬픔에 절여있는 그의 얼굴에 자신이 담겨있는 것을 보자 레아는 아무런 반응을 할 수가 없었다. 지금도 자신의 손을 잡아 블래스터를 빼앗고 있는 것을 뒤늦게 깨달을 정도였다.
"그것 보단 이게 확실할거야. 부적대신 가지고 다녔던 건데. 다 의미가 있었구나."
"무엇을..."
"레아. 루크를 살리고 싶지?"
자신의 손에 있는 것은 루크의 라이트세이버 였다. 집어선 안돼는 것을 집은 것처럼 레아의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자신에겐 너무 크고 무겁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루크는 이 무거운 것을 들고 깃털처럼 날아다닌거지? 머리엔 처음으로 울음소리 같은 투정이 튀어나오지만 그것도 자신의 손을 감싸듯 잡아오는 겁은 의수 때문에 머릿속이 하얘진다.
"이걸 누르면 돼. 누르면 루크가 살아."
"당신이 루크를 죽이고 있다는 거야?"
"그것 뿐만이 아닌 걸 알잖아. 난 살아있으면 안돼는 거였어. 아니 존재 자체 없어져야했지. 그러니깐..."
그걸 내가 해주렴 내 딸아. 미안하다는 듯 웃는 얼굴이 왜이렇게 아파보이던가. 자신의 고향이 없어진 이후부터 매일 꿈꾸던 순간이 갑자기 눈앞에 맞닥트렸다. 몇번이고 그의 심장을 꿰뚫었는데...막상 닥치고 보니 무언가가에 압도당해 아무것도 못하고 있었다. 무릎이 절로 덜덜 떨려왔고 손가락은 마비가 온 듯 뻣뻣하다. 어느 새 눈물이 바스라진 그를 대신 하듯 눈에 눈물이 고였고 그 눈물을 그의 또다른 의수가 거두워간다. 그리고 슬프게도 이 상황은 자신이 여태 그를 죽일 수 없는지 깨닫는 순간이였다.
"레아 난 준비가 끝났어."
"나, 나는..."
"다른 건 생각하지마. 루크만, 루크를 살릴 수 있는 것만 생각해"
그럼 살아난 루크는 어떻게 할 건데? 입에 맴도는 말이 바싹마른 입천장에 붙었다. 만약 이 버튼을 눌러 그의 목숨을 거두어가면 지금 병상에 누워있는 누이를 다시 볼 수 있을까? 옛날처럼 보고 웃으며 떠들 수 있었을까?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그제야 지금 눈 앞에 있는 이가 왜 자신의 아버지가 되지 못하고 악몽같은 황제의 아래 굴러지고 이렇게 죽기를 바라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레아는 오늘 참 많은 것을 알아간다. 그의 아버지는 자신이 걸었던 그 길을 레아에게 강요하는 중이었다. 오직 자신의 이기심을 가지고 말이다. 레아는 고장난 몸을 이끌며 그의 의수에 벗어나 뒷걸음쳤다.
"못해..."
"대체 왜...?"
"당신을 죽이면 난 어쩌라고? 루크의 원망을 나보고 어떻게 감당하라는 거야!"
"... ..."
"당신만 루크에게 사랑받고 살고 싶은 줄 알아! 나도, 나도 루크와 웃으며 살고 싶어...!"
"...미안해. 내가 몰랐어."
파드메 품 속에서 제일 처음 너를 발견했는데...지금은 아무것도 모르는 구나. 여전한 자신은 죽기 직전까지 깨달음을 알았다. 닦아 주었던 눈물을 흘리는 딸아이에게 다가가지 못해 들고있는 아이의 라이트세이버의 무게만 느껴졌다. 만약 이것이 진짜 손이였음 딸아이의 온기까지 느껴졌을텐데...아쉬움을 가지고 늘어트렸던 다른 의수를 들어 아이를 닮은 라이트세이버를 단단히 쥐었다. 눈을 감으며 아이가 손수 만든 라이트세이버의 쓸어본다. 마지막 감은 눈 속에 웃는 루크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럼 내 말을 전해주렴."
"... ..."
"내가 루크를 많이 사랑한다고"
뜨겁게 달군 심장이 멈출 순간 이었다.
그래 그래야 했지만 외려 둔탁하게 가슴을 치는 느낌에 몸이 붕 떠오르며 추락하듯 딱딱한 바윗산을 굴렀다. 온몸을 지배하던 아픔은 잠시였고 아직도 자신이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양 손에 잡히는 것은 없었다. 어질거리는 시야를 들자 공중에 떠있는 루크의 라이트세이버는 유유히 아나킨이 있는 곳 반대로 날아갔다. 벌떡 일어난 몸과 다르게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그 라이트세이버가 닿은 곳엔 그토록 보고 싶었던 아이가 서있었다.
"루크..."
"...아버지"
"어째서 네가...?"
"제 마스터가 알려주었어요"
반란군 기지에서 여기까지 오는 길이는 몇개월이 꼬박 걸리는 거리였다. 그 거리를 병상에 누워있는 아이가 달려왔다고 귀신이 아니고서야 말이 안돼는 것이었다. 이번엔 루크가 걸어오자 아나킨이 뒷걸음을친다. 결국 자신때문에 죽어버린 아들을 아나킨은 마주할 자신이 없다. 입에서는 참았던 울음소리를 터트리며 무너져 내린다. 아이는 결국 괜찮은 척 참아내다 무너진 아버지를 품에 안았다. 그 품에는 아들의 따뜻한 포스가 전해졌다. 입에는 억울함이 터진다.
"다들 왜 그러는거야? 난 죽어야 돼 죽어야지 이 세상이 살아. 내가 산다고 루크 제발, 나 좀 죽게 내버러둬"
"그렇지 않아요."
"아니, 내가 살아있음 결국 포스가, 내 아버지가 모든 것을 파괴할거야. 나를 사랑한다는 핑계로...!"
"포스가 원해서 그런게 아니에요. 포스가 없어도 저는 리빙 포스를 쓸 수 있음 사용했을거에요."
분명 다 죽어가는 자신의 아들인데도 웃는 얼굴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때보다 더 반짝반짝 빛나는 것 같았다. 아나킨은 엉망으로 더럽혀진 눈앞의 아들을 보았다. 아이의 얼굴은 더 야위었고 눈두덩이는 깊어보였다. 햐앟게 질린 얼굴과 다르게 눈가는 짙은 다크서클이 달려있었다. 딱 봐도 내일 눈을 감아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죽음이 함께하는 얼굴. 하지만 그 얼굴에는 왜이렇게 희망에 반짝거리는 것일까?
"아버지가 저를 사랑하는 만큼 저도 아버지를 사랑해요"
"...루크"
"그날, 제국을 붕괴했을때 저는 아버지와 함께하는 미래를 꿈꿨어요. 레아와 한이 결혼 해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포스유전이면 아버지와 함께 제다이로 가르치는 미래를 말이죠"
"그런..."
"그러니깐 전 포기하지 않을거에요. 모두 다 함께 살 수 있다면 살아갈거에요. 그러니 아버지도 포기하지 말아주세요. 저와 함께 살아가요."
그 말이, 얼마나 달콤한지 루크는 모를 것이다. 47년간 죽지 못해 살아가던 겁쟁이가 결국 죽음까지 마음 먹었던 용기를 그는 한순간에 녹여버리고 그 사이에 희망을 싹틔우게 만들었다.
* * *
은은한 무드등이 피어오르는 오두막 안은 의외로 아늑했다. 함께 살기위해서 입고 있던 다스베이더를 벗어던지고 아나킨은 옛날에 입었던 익숙한 튜닉을 입고 아이가 잠든 침실 속으로 천천히 들어섰다. 환자가 있는 침실과 다르게 커다란 창문이 떠다니는 별들을 가득 담고 있었다. 들어 선 침실에 아이는 어제와 같은 모습으로 잠들어 있었다. 천천히 다가가 흐드러진 금발을 부드럽게 쓸어넘겼다. 그리고 가까이 아이의 코끝에 고개를 숙인다. 미약하지만 고른 숨이 귓가를 간지럽혔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아나킨의 입가엔 안도의 숨에서 미소로 번져나갔다.
오늘도 열심히 살아줘서 고마워 내 사랑
넘겨진 아이의 뽀얀 이마에 입을 맞춘다. 아이의 체온은 그때처럼 펄펄 끓지 않았다. 자신이 제다이로서 제국군과 싸우는 것이 아이에겐 긍정적으로 적용되는 것 같았다. 이번엔 레아의 말이 맞는 걸까? 오래 보지 못했던 그 얼굴을 몇번이고 바라보며 내일을 생각했다.
문득 넓은 창문 넘어 별똥별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것이 지금의 '아버지'가 지나 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이제는 알고 있었다. 포스는 자신의 곁으로 아들을 가지고 싶었던 것이었다. 아무것도 포스의 흐름을 타고 사는 모든 생명은 다시 새로운 품에 탄생하게 되는 것이었지만 자신의 손으로 목숨을 끊은 자들은 언제나 포스의 곁에 맴돌게 된다. 그렇기에 포스는 자신에게 이런 끔찍한 시련을 준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