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꼭대기까지 밝다 못해 쨍한 태양의 차지가 될때까지 땅 속에 있는 매미처럼 몸에 힘을 쭉 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면 항상 절반은 죽어 있는 이가 느리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잠도 없는지 나의 수면의 절반도 체 채우지 못하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일어나"
"... ..."
"내가 좋아하는 계란 토스트 했어"
"또 뭐 태워 먹은 건 아니지?"
마비라도 온 듯 꼼짝 못하는 몸이 생명이라곤 없는 딱딱한 왼손이 등을 지긋이 누르자 그제야 마비라도 풀리 듯 몸이 움직인다. 타박하듯 장난스레 말을 걸자 차갑다 못해 시체처럼 서늘한 청회색 눈동자가 느리게 빛을 담더니 얕은 숨소리와 함께 입꼬리를 올렸다.
같이 마주한 식탁엔 이제는 제법 반숙으로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계란 후라이가 생명력 있는 노란 빛깔을 띄며 개구장이처럼 동글동글한 모습으로 얌전히 있었다. 마주보고 먹는 토스트는 제법 브런치로 맛있었고 갓 일어난 뱃 속을 든든하게 채워준다.힐끔 맞은편 이가 느리게 각진 턱을 움직이며 툭 터져 반짝거리는 강철팔에 질질 흐르는 노란자와 마찬가지로 싱그러운 노란빛을 띄는 오렌지 주스를 마셨다. 그러면서 앞에 놓인 음식을 보지 않는 멍한 청회색은 여전히 죽은 시체의 눈빛이였다. 그 눈이 자신에게 닿자 급하게 앞에 있는 브런치로 시선을 떨어졌다. 그리고 퍼지는 안타까움과 자신에 대한 한심함에 미안함을 가득 담고 속안 깊숙히 중얼거린다. 미안해 스티브.
스티브가 죽자 혼자 남은 버키는 자신이 죽은 것처럼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그리고 남은 어벤져스와 국가 정부는 '캡틴 아메리카'의 시체와 '윈터 솔져'의 존재를 '어떻게 처분 할 것인가?'에 대해 골머리를 썩었다. 당연히 등을 맡기는 전우들은 그의 시체를 국립묘지 중 제일 명예로운 자리에 묻히길 바래왔고 국가는 슈퍼솔져의 혈청이 남은 그 시체를 기증하여 캡틴 아메리카 답게 그의 뒤를 이을 수 있는 실험체로 쓰이길 바라왔다. 그리고 시체처럼 잠만 자는 캡틴 아메리카의 하울링 코만도스의 스나이퍼이자 하이드라의 오래된 그 '물건'이였던, 남은 것은 다 망가진 정신과 PTSD만으로 숨통이 꽉 조여있는 퇴역군인인 스티브의 연인은 한 세기가 지나도록 사랑하던 이를 잃자 모두의 짐덩이처럼 이렇게 버려져 있었다. 캡틴 아메리카와 누구보다 페어플레이를 하던 하늘을 나는 히어로, 통칭 팔콘이라고 알려진 샘은 자신이 동경하던 영웅의 빽을 믿고 깝죽거리던 재수 없는 친구를 죽어버린 영웅을 대신 자리를 지켰다. 그때, 마지막 캡틴 아메리카의 죽음의 순간에 마주한 짙은 바다와 같은 벽안이 아직도 잊을 수가 없었다.
오랜 공방이 오갔다. 시간이 지날 수록 어벤져스 업스테이지는 스티브의 죽음으로 그린란드라도 빠진 것처럼 싸늘했다. 나름 잔잔한 노래와 각자의 농담으로 웃음이 전해지던 공간이였다는 것이 거짓말이라는 듯 그 많은 조명들은 빛을 내뿜지 못했고 맴버들은 마치 장례식을 보는 듯한 검은 옷들을 입고 있었다. 다들 가슴에 큰 멍과 유리조각이 박혀있었다. 동료들의 웃는 얼굴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직은 어린 축인 완다와 피터는 그 어두운 업스테이지 가운데 앉아 훌쩍거리는 모습을 몇 번 볼 수 있었다. 스티브의 슈퍼솔져 혈청에 대한 저작권에 대해 나라와 소송싸움을 벌이는 토니 스타크는 결국 술에 잔뜩 취해 스티브가 죽었는데 캡틴아메리카에 대한 저작권을 가지고 싸우는 자신이 이번만큼은 너무 싫다며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는 소리까지 듣게 되었다. 다들 하나같이 캡틴 아메리카가 아닌 스티브의 죽음으로 점점 아파하고 지쳐가고 괴로워져만 간다. 샘 또한 사람이 죽었는데 웃기지도 않는 촌극을 벌이는 이 상황이 기가 막히고 감당이 안되어 소중한 친구를 보러 업스테이지 아래로 내려갔다. 거기엔 포르말린 속에 스티브가 잠들어 있었다. 심장에 뚫린 총상 자국이 없었다면 눈을 감은 스티브는 몇번 긴 속눈썹을 깜박거리며 눈을 뜰 것 같았다. 그 얼굴 위로 마지막 삶이 떠나가는 스티브의 얼굴이 보였다. 그 얼굴은 갑작스러웠고 삶은 미련이 가득했다. 무엇보다 자신에게 무언가를 '말하고자'하고 싶어했다.
"대체 그게 뭐였어 스티브..."
결국은 자본주의의 승리로 돌아갔다. 그제야 표본처럼 약물에 절여있는 스티브의 시체를 꺼내고 푹신한 벨벳으로 둘러진 관 짝에 들어갈 수 있었다. 모두가 그가 좋아하던 미술도구와 음악과 꽃을 챙기며 그를 떠나 보는 준비를 막 시작하고 있을 때 내내 잠들어 있던 그의 연인이 눈을 떴다.
오랜만에 바라본 청회색 눈은 PTSD를 앓았을 때 보다 더 싸늘하게 죽어 있었기에 다들 그에게 무슨 말을 하지 못했다. 반쯤은 그의 죽음을 예상하던 이들이였고 샘도 마찬가지 였다. 하지만 천천히 눈동자를 굴리던 그 시선 끝에 자신에게 닿고 그 얼굴에 상처가 생긴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굳은 입술이 느리게 달싹거렸을때 샘은 그제야 죽기직전의 스티브의 얼굴이 '무엇'을 바라왔는지 깨달았다.
"스티브가 아직은 오지 말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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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윈터 솔져를 맡겠다고 말하자마자 꿈에 죽은 스티브가 나왔다 그는 마치 안무를 물어보듯 그의 앞에 마주앉아 느리게 눈을 깜박거렸다. 그도 죽고 싶지 않았다는 듯 얼굴엔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이였다. 마치 아직도 웃음을 찾지 못한 다른 동료들과 마찬가지인 빛깔을 띄었다. 아니 오히려 걱정이 가득한 얼굴이라는 것이 맞겠다. 샘은 그럴때마다 정말 그리운 그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스티브의 소중한 연인은 아직도 죽지 못해 살아갔다. 눈을 뜨고 있을때마다 점점 가속화 되듯 사랑하는 스티브의 곁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울부짖었다. 샘은 알고 싶지 않은 버키 반즈의 피가 가득한 욕조를 치운지가 열 손가락이 넘어갔기에 자신의 앞에 있는 그를 보며 걱정하지 말라고 웃으며 당당히 말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점점 옅어지는 그의 친구는 점점 날카로운 바람이 되어 샘의 주변을 엉망으로 휘젓고 사라진다. 마치 이것이 지금 남아있는 버키 반즈의 슬픔이라는 듯이 아니면 아직 남겨둔 연인을 향한 스티브의 감정처럼 언제나 그의 살이 애이도록 휘몰아치다 잠과 함께 사라져만 갔다.
또 다시 눈을 떴다. 몸은 여전히 그들이 남기고 간 슬픈 사랑에 추위와 오한에 마비가 온 듯 누워만 있어야 했다. 손끝이 파르르 떨어만 갔지만 움직일 수가 없었다. 차라리 눈물이라도 흘릴 수 있다면 이 길고 긴 기다림이 짧아 질 수 가 있을텐데...그러기엔 샘의 눈꺼풀마저 눈을 뜨지 못하게 힘이 없었다. 얼굴 위로 태양의 발자국이 느리게 지나간다. 샘은 눈도 못 뜨는 이 기다림 속에 아주, 아주 작은 소망의 기도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