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덕질/단편 (8)
Wuthering Heights
해가 고개를 들 것 같은 첫 새벽 이었다. 밀러는 그 새벽 속에서도 누가 자신을 발견해주길 바라는 듯 강렬하게 보이는 오렌지색 바람 막이를 입고 잠들어 있는 마을을 뛰어다녔다. 잠을 원하는 머리는 잔두통으로 호소를 해왔지만 밀러는 오늘 새벽엔 들어 줄 마음이 없었다. 다리를 엉켜붙는 강아지 풀을 헤치며, 밀러는 자신의 소중한 가족보다 많이 보는 직장 상사 이름을 불렀다. 알렉ㅡ 하디ㅡ 스산한 바람만이 밀러의 비명같은 외침에 대답했다. 알렉 하디가 사라진지 2시간이 넘어가고 있었다. 밀러에게 그가 사라졌다는 걸 알린 건 알렉 하디의 하나 뿐인 딸 이였다. 새벽 3시가 넘어가는 시각에 울리는 핸드폰에 밀러는 욕설을 중얼거리며 다 가라앉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어떡해요? 아빠가 사라졌어요. 밀러 만큼 가라..
제 불행은 거부 할 수 없는 자의 불행이었습니다 -인간실격 이제야 만난 아이는 고작 23살이었다. 23살. 모든 것이 불안하고 위태로웠고 그렇기에 제 손으로 망처버렸던 최악의 시기. 그 시기가 이제는 하나뿐인 아들까지 뺏어갈려고 한다. 아나킨은 부쩍 잠이 많아진 아이의 손을 잡으며 차오르는 눈물을 삼켰다. 그때나 지금이나 눈물이라는 것은 감정을 흐리게 만들어 상황을 가리게 한다. 포스에게 갉아먹혀가는 듯 자신보다 창백해진 루크의 이마를 쓸었다. 자신의 마음대로 움직이지만 씨늘한지 펄펄 끓은 건지 아들의 온기가 전해지지 않는 의수가 오늘따라 너무 야속하다. 그런 자신의 포스가 잠든 아이에게 닿은 것일까? 살이 푹 꺼진 눈꺼풀 위로 눈동자가 돌아가는게 보이더니 그토록 예쁜 눈동자가 아나킨을 반겼다. “아버지..
※캐릭터 사망 소재 있습니다 주의! 그가 꿈에 나오면 오한으로 인해 항상 침대 밖으로 나가질 못했다. 하늘 꼭대기까지 밝다 못해 쨍한 태양의 차지가 될때까지 땅 속에 있는 매미처럼 몸에 힘을 쭉 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면 항상 절반은 죽어 있는 이가 느리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잠도 없는지 나의 수면의 절반도 체 채우지 못하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일어나""... ...""내가 좋아하는 계란 토스트 했어""또 뭐 태워 먹은 건 아니지?" 마비라도 온 듯 꼼짝 못하는 몸이 생명이라곤 없는 딱딱한 왼손이 등을 지긋이 누르자 그제야 마비라도 풀리 듯 몸이 움직인다. 타박하듯 장난스레 말을 걸자 차갑다 못해 시체처럼 서늘한 청회색 눈동자가 느리게 빛을 담더니 얕은 숨소리와 함께 입꼬리를 올렸다.같이 ..
모든게 흑백으로 보이는 이 세계에서 한 마리의 너구리는 몸을 웅크릴 수 밖에 없었다. 짦은 주기로 찾아오는 복통에 그 누구보다 사람다운 말을 하던 주둥이는 짐승 같은 끙끙 소리가 절로 나왔다. 누구보다 짐승새끼처럼 시꺼먼 앞발이 기형아처럼 튀어나온 배를 몇 번이고 쓸어보지만 결국 너구리의 가랑이에선 팍 하고 물풍선이 터지는 듯한 물소리와 함께 줄줄줄 양수를 흘렸다. 너구리는, 이 세상 유일하게 개조된 라쿤인 로켓은 이제야 시작되는 진통과 출산에 뾰족한 어금니가 자랑인 주둥이에 힘을 주었다. 그 너구리가 끙끙거리며 핏덩이를 낳을 때까지 소형 우주선 넘어 세계는 매마른 나무들과 사막들 만이 요란한 바람 소리를 내지를 뿐이였다. 몇 번이고 기절할 것 같은 너구리의 적갈색 눈동자에는 유영하는 물고기마냥 흐르는 ..
*퍼벤 전 멸팁버키 입니다. "짜잔! 우리 스티비 잘 있었어?" 스티브는 심장부근에 손을 올릴 수 밖에 없었다. 가뜩이나 연약한 몸은 작은 충격에서 다친 새가슴 마냥 미친듯이 심장이 뛰었다. 반응이라면 심장 부근을 잡고 있는 것만 하고 있기만 하자 생글생글 웃으며 튀어 나온 그는 당장 고개를 숙였다. 한참을 기다렸는지 가까워지자 전해지는 코롱향이 바람냄새와 섞여 스티브에게 전해진다. 어디 아파? 병원에서 무슨 문제 있대? 상냥한 말과 이 한 겨울 바깥에 있어도 뜨거운 큰 손이 스티브의 가늘디 가는 어깨를 만지며 마지막은 목덜미를 꾸욱 잡았다. 온기 때문인지 아님 여태까지 앓아 온 감정 때문인지 목덜미 부분부터 시작해 심장 끝까지 불이 타오르는 것을 느꼈다. "별거 없었어...근데 무슨 일이야? 메이린이랑..
제임스는 운이 좋다. 대공황시대에서도 가족들 누구도 아픈 사람도 없었고 배를 곪아 어린 동생들을 팔아치우지 않을 정도로 재산이 있었다. 그는 영리했고 외모도 남들 못지않게 잘생겼기에 주변 사람들은 그를 좋아고 사랑해 마지 않았다. 그 중 아무도 몰라주던 진정한 사랑을 만나 함께 할 수 있었다. 거기다 2차 세계 대전에 끌려가 전쟁포로가 되었어도 평생을 함께한 소중한 사랑이 자신을 구하려 올 정로도 자신은 운이 좋았다. 그것도 두번씩이나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신가요?" 이 행운을 제임스 반즈는 놓칠 생각 따위 없었다. 반즈가 지금의 캡틴 아메리카를 만나기 전까지 여기에 있는 모든 이들은 비상상태 모드로 서있었다. 토니는 잘빠진 시계 윗면을 꾹 눌러 아머를 입을려고 했고 언제나 화가 나있는 배너박사..
※앵스트 주의 "축하해. 세뇌군인 네 말대로 혈청이 반토막이야""....지금 장난이 나와?""...그리고 유감이야. 혈청이 사라지니 그 자리에 종양들이 가득찼어" 스티브의 작은 머리통에 종양이 가득 차 있었다. 그 작은 몸은 무슨 욕심이 이렇게 많아선...허탈감에 멍하니 스크린을 바라보자 귓가에 스치는 장기들의 이름들이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위, 간, 소장, 동맥,폐,부신 골고루 가지고 있네""어떻게...증상하나 보이지 않았지?""증상은 있었어. 알잖아" 몇번이나 콜록거리며 토하던 붉은 핏줄기가 선명한 낙인처럼 떠올랐다. 그저 혈청의 부작용이나 지긋지긋한 천식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또다른 절망감에 정신을 못차리는 윈터 솔져의 모습에 모순된 감정들이 올라왔다. 역겨움과 안타까움. 치밀어 오르는 감정들을..
※앵스트 주의. 이것만큼 멋진 지옥이 없다고 생각한 자신을 비웃기라도 하 듯 그 끝은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함께한 시간 빛도 없는 수면상태에서 깨어났을 때 머리를 찌르는 두통에 욕을 해야하는지 아님 병신처럼 실실 웃어야 하는지 버키는 갈피를 잡지 못했다. 오랫동안 감았던 눈은 각막을 찢는 빛을 받아드리기 위해 눈꺼풀을 몇번이나 깜박였다. 손을 들어보는데 양손이 들렸다. 왼손은 투박했던 과거의 손과 다르게 좀더 정교했고 사람팔 같은 인조피부까지 덮혀있었다. 놀라 몸을 일으키자 흐릿하지만 바쁘게 움직이던 인영이 멈춰섰다. 버키도 반쯤 일어난 상태에서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어정쩡하게 힘든 상태에서 멈춘 버키와 다르게 상대방이 더 빠르게 다가왔다. 이리저리 몸 상태를 보는 손길이 무슨 고기 품평하듯 ..